2021년 07월 31일 토요일
날씨 : ☀️
#1
어느 겨울날에 쓴 일기.
주제는 설거지.
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설거지라는 건 짜증 나는 일거리 중 하나였다.
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가 엄마는 설거지를 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, 하고 생각해본 것이 혼자 생각을 곰곰이 할 필요가 있을 때 찾게 되는 설거지의 시작이었다.
엄마는 서럽게 소리내며 울기도, 잔소리를 하기도,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.
참 억울하고 비참해서,
화풀이 대상이 수북한 그릇들 뿐이라서,
뭐라고 하고 싶어서 였을까.
틀어놓은 물과 함께 쓰라린 속을 얼마나 흘려보냈을까.
입술이 부르텄던 이유도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울음을 참다 난 상처였을까.
기름때 낀 그릇을 박박 문지르며 섭섭함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을까.
설거지를 하던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리다가 파스가 가득 붙은 가는 손목을 연신 주무르시는 엄마의 모습을 몇 초 쳐다도 못 보고 고개를 돌려버렸다. 엄마가 저렇게 자그마한 사람이었던가. 축 처진 어깨처럼 머리카락도 푸석해 보인다. 당신이 선택한 결혼, 삶이란 것이 분명 이렇지 않았을 텐데 아직 제 앞가림도 못하는 딸이 밉지도 않을까? 당신이 원하던 삶이란 건 애초에 없었는지, 잃어버렸는지 가여워서였다.
그 후, 설거지는 하루 일과의 일부가 됐다. 설거지를 하면 엄마가 느껴졌고 내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하기엔 설거지할 때가 가장 편안했다.
이제는 일기를 쓰다가도 돌아볼 엄마가 없어서 그때 쓴 일기를 통해 엄마를 다시 그려본다. 보고 싶다.
#2 20210727T
청주에 다녀왔다. 10년 동안 건들지도 못했던 엄마의 물건을 소각하기로 했다. 청주에는 가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와볼 줄이야.
소각해주시는 분은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는지 소각로 앞에서 쉴 새 없이 인생과 삶과 죽음에 대해 떠들었다. 반바지에 대충 잠근 체크 반팔 셔츠를 선풍기 바람에 팔락이면서.. 그럴 줄 알았다면 다른 곳을 갔었을 텐데..
전부는 아니지만 캐리어 2개 정도의 짐을 태웠다. 엄마의 짐을 좀 더 끌어안고 있다가 보낼걸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. 하나쯤은 품고 살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엄마가 쓰시던 뜨개바늘 하나를 챙겼다. 뜨개질을 처음 배울 때 모양이 엉망으로 될 때 마다 엄마 특유의 반달눈웃음으로 괜찮아, 하던 얼굴이 떠오른다. (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매년 세이브더칠드런 모자뜨기 캠페인도 참여하게 됐다.)
이번 일주일간은 짜증과 우울과 눈물의 시간이었다. 갑자기 짜증을 확 내다가 울일도 아닌데 예능보면서 울기도 하고 감정이 오락가락했다.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무뎌질 줄 알았는데 아직 나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한가보다. 당분간은 안괜찮은 상태로 있을예정.
#3
흐리멍텅함과 또렷함이 번갈아 있는 시간.
새벽의 공기를 꽈악 눌러모아 방안에 가둬 둔 것 처럼 답답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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